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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사

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와 좌·우익 대립

1)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

  (1) 배경 : 3국(미·영·소) 외상이 모스크바에 모여 카이로 선언의 원칙에 한국 독립 문제 협의
  (2) 내용 : 미·소 공동 위원회 설치, 최고 5년간 미·영·중·소가 신탁통치 확정 결의
  (3) 결과 : 우익 세력 반탁운동과 좌익 세력 찬탁운동으로 좌·우 대립 초래
     ① 우익 세력 : 김구·이승만·한국민주당 등 신탁통치 반대, 반탁 운동을 반공운동으로 확대
     ② 좌익 세력 : 초기 신탁통치 반대, 이후 회의 결정사항 지지
     ③ 중도 세력 : 김규식·여운형 등 신탁통치 찬성하되 정부 수립 후 결정하자고 주장

2) 미·소 공동 위원회

  (1) 제1차 미·소 공동 위원회(1946. 3, 서울 덕수궁)
     ① 소련 : 신탁통치 찬성하는 정치 단체만 참여 주장
     ② 미국 : 신탁통치 찬성 및 반대하는 정치 단체 참여 주장
     ③ 결과 : 소련의 미국과 민족주의 세력 무력화 의도로 위원회 결렬
  (2) 제2차 미·소 공동 위원회(1947. 5, 서울과 평양)
     ① 소련 : 신탁통치 반대 단체를 완전 협의 대상 제외 주장
     ② 미국 : 협의 대상 문제 4개국 외상 회담 제의
     ③ 결과 : 미국은 한국 문제를 10월 국제연합(UN)으로 이관

3) 공산 세력의 활동

  (1)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조직(1946. 2)
     ① 배경 : 김구와 이승만 중심의 우익 세력 강화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
     ② 조직 : 여운형·박헌영·허헌·김원봉·백남운 등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·조선인민당·남조선신민당 등 좌익 중심 단체들이 통합 결성
     ③ 주장 :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과 미·소 공동위원회 지지,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의 처단, 토지 문제의 민주적 해결,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8시간 노동제 실시 등 주장
     ④ 활동 : 제1차 미·소 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와 미군정의 좌익 탄압 본격화로 미·소 공동위원회 재개 요구 대중 시위 및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좌우 합작운동을 미 군정의 친미정권 수립이라 철저 배격
  (2) 조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(1946. 5)
     ① 주도 : 조선공산당이 재정난 타개 목적 1945. 10월부터 위조지폐 발행
     ② 전개 : 조선 정판사에서 일제가 남겨둔 지폐 원판 이용 약 1,200만원 위조지폐 발행 조선공산당 자금으로 사용
     ③ 결과 : 미 군정청은 조선공산당의 조직적 사건으로 결론, 조선 정판사에서 인쇄하던 기관지 해방일보 폐간
     ④ 영향 : 조선공산당이 남한 내 치명적 타격, 반미 투쟁 노선으로 입장 전환


4) 좌익과 우익의 통합 시도

  (1) 단독 정부 수립의 대두

     ① 배경 : 제1차 미·소 공동체 결렬

     ② 내용 : 이승만의 정읍 연설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 수립 주장(1946. 6)

  (2) 좌·우 합작운동

     ① 배경 : 이승만의 정읍 연설 등 단독정부 수립 대두로 김규식·여운형 등 중도파 인사들 사이에 좌·우 합작의 필요성 대두

     ② 좌·우 합작 운동의 전개

        ㉠ 좌우 합작 위원회 설치(1946. 7) : 미군정의 지원으로 중도 우익의 김규식·안재홍과 중도 좌익의 여운형 등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중도파 인사 중심 조직

        ㉡ 좌우 통합의 난항 : 통합 위해 회담 실시, 좌익의 합작 원칙 5개 조항과 우익의 합작 8원칙 발표로 결렬

        ㉢ 좌우 합작 7원칙 발표(1946. 10) : 여운형의 절충안 7원칙 결정, 김구와 한국독립당 찬성, 이승만 조건부찬성,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한국민주당·조선공산당 반대

     ③ 결과

        ㉠ 미군정의 지지 : 미군정은 좌·우 합작 7원칙 지지 성명 발표

        ㉡ 남조선과도입법위원 창설(1946. 12)

           ⓐ 구성 : 김규식 의장, 45명 민선의원(이승만계, 한국민주당계), 45명 관선의원(좌우 합작파)의 남조선 입법의원 구성

           ⓑ 분열 : 여운형 등 중도 좌파 입법 기구 조직 반대로 합작 위원 탈퇴

        ㉢ 남조선 과도 정부 발족 : 미군정 민정장관에 안재홍을 임명(1947. 2)

     ④ 실패

        ㉠ 주도 세력의 불참 : 여운형 탈퇴와 김구·이승만 세력과 조선공산당 등 주도세력 불참으로 실질적 역할 미비

        ㉡ 미군정의 지지 철회 : 트루먼 톡트린 발표(1947. 3)와 세계적 냉전 구도로 단정 수립을 지지하는 방향 전환(우익 지원)

        ㉢ 해체 : 제2차 미·소 공동위원회 결렬(1947. 5)과 합작 중심인 여운형 암살(1947. 7), 합작 실패 위원회 해체(1947. 12)