한국사

근대사회 전개(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)

화담출판사 2019. 10. 24. 08:53

1) 19세기 후반의 국내외 정세

  (1) 국내 정세
     ① 정치 문란과 농민 봉기 : 세도 정치로 인한 부정부패와 매관매직 성행, 탐관오리의 농민 수탈,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삼정의 문란, 삼남 지방 중심 농민 봉기 전국적 확대
     ② 동학과 서학의 확산 : 평등과 내세사상의 서학(천주교)과 사회개혁사상의 동학이 확산
  (2) 국외 정세
     ① 이앙선 출몰 : 최초로 통상 요구한 영국 거절(1832)
     ② 제국주의 열강 침략 : 러시아의 연해주 차지(1860) 등 위기의식과 사회 불안 고조

2) 흥선대원군의 대내적 개혁 정치

  (1) 왕권 강화 정책
     ① 세도 정치 타파 : 안동 김씨 등 일부 세도 가문 축출 및 인재 고루 등용
     ② 비변사 혁파 : 의정부 기능 부활 및 삼군부 설치로 정권과 군권을 분리
     ③ 법전 정비 : 대전회편(1865)과 육전조례(1867) 정비
     ④ 경북궁 중건(1865~1868) : 왕실 존엄성 회복 목적, 원납전 강제 징수와 당백전 남발로 물가 폭등 및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경제적 혼란 초래
  (2) 민생 안정책
     ① 삼정의 개혁
        ㉠ 전정 개혁 : 양전 사업을 통해 은결 및 양반과 토호의 불법적 토지 겸병 금지
        ㉡ 군정 개혁 : 호포법(1870) 실시로 양반도 군포 징수, 군역 평등과 민생 안정
        ㉢ 환곡 개혁 : 사창제 실시로 환곡제 폐단 시정
     ② 서원 철폐(1871) : 만동묘를 비롯하여 47개소만 남기고 철폐, 서원의 소유한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국가 재정 확충
  (3) 통상 수교 거부 정책
     ① 외세 배격 : 서양과의 통상 일체 거부와 서양 문물 유입 금지
     ② 천주교 탄압 요구 : 프랑스에 의해 베이징 함락(1860)된 후 서양에 대한 경계심과 천주교 탄압 요구
     ③ 병인박해(1866. 1)
        ㉠ 원인 : 러시아에 대한 남하 경계 목적 프랑스 선교사 통해 프랑스를 끌어들여 천주교에 매우 관대
        ㉡ 경과 : 프랑스 요구 거절과 청의 천주교 탄압 소식에 유생들 천주교 탄압 요구,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흥선대원군 프랑스 신부 9명과 수천 명의 신도 처형
        ㉢ 영향 : 병인양요 일어나는 원인 제공
  (4) 흥선대원군의 의의와 한계
     ① 개혁정치 의의 : 왕권 중심 전통적 통치 체제 정비, 국가와 민생안정 기여
     ② 한계 : 전통적 틀 안의 보수적 개혁으로 일시적 외세 침략 저지로 근대화 문호개방 지연 및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됨

3) 서양 열강과의 대립

  (1) 제너럴셔먼호 사건(1866. 7)
     ① 원인 : 미국상인 프레스턴 제너럴셔먼호 평양 대동강 정박 후 통상 요구
     ② 경과 : 평안관찰사 박규수 수차례 퇴거요구, 제너럴셔먼호 침몰(1866. 8)
     ③ 영향 : 미국이 조선에 대한 포함(대포와 함대를 동원한 외교) 외교 정책 추진
  (2) 병인양요(1866. 9)
     ① 원인 : 병인박해로 프랑스 로즈 제독 선교사 처형에 구실로 강화도 침입
     ② 경과 : 문수산성의 한성근 부대 분패 후 정족산성에서 양헌수 부대 분전하여 프랑스 군대 철수
     ③ 결과 : 외규장각 도서·문화재·금·은 등 약탈
  (3) 오페르트 도굴(1868. 4)
     ① 1866년 두 번의 통상요구 거부로 독일 탐험가 오페르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도굴 실패
     ② 흥선대원군의 통상거부의지 더욱 강화와 서양 오랑캐라는 인식 확산
  (4) 신미양요(1871. 5)
     ① 원인 :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 로저스 제독 강화도 침입
     ② 경과 : 어재연(광성진)의 덕진진·초지진 폭격 패배, 조선 관군 막대한 손실
     ③ 결과 : 미군의 자연 철군으로 대원군은 강화도 수비 강화(심도포량미 부과)와 척화비(1871) 건립으로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통상수교 거부의지 강력 표명